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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한척 하다 망쬬든 녀

남자들만 허풍, 허세가 있는 게 아니다.

여자도 마찬가지. 예쁜 척, 고고한 척, 약한 척.

그 중에서도 상대와 자신을 모두 괴롭히는 털털한 척이야말로 연애를 망친다.

털털함으로 시작했다가 몸과 마음 탈탈 털린 채 연애를 망친 기억을 고백한다.


나는 왜 털털한 척하게 됐나
어린 시절 윤희의 친가는 남자 형제들로 가득했다.

스트리트 파이터를 하러 오락실에, 성룡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OB 경기를 보러 야구장에.

남자들의 놀거리는 천지에 있었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놀기 위해서는 야구 선수의 이름을 꿰고 있는 것, 잽싼 손놀림으로 조이스틱을 만지는 것 말고도 필요한 게 있었다.

아무리 내기에서 져도 삐치지 않기, 짓궂은 장난에도 울지 않기, 꿀밤 세게 맞아도 엄마에게 이르지 않기.

즉 털털함이 필요했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윤희는 주변 사람들에게 “여대 나온 애 같지 않다”라는 말을 들었다. 그때까지 윤희는 자신이 정말 털털한 여자인 줄 알았다.

홀로 방에서 슬픈 발라드 음악을 들으며 눈물 짓고, 짝사랑하는 남자가 다른 여자에게 친절하게 굴었을 때 불같이 질투하며,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 받아 가슴앓이를 하더라도, 방 문을 나가면 전혀 다른 모습이다.

괜찮은 척, 덤덤한 척, 무신경한 척. 털털한 여자의 표본이다.

물론 그 덕을 본 적도 많다. 직장에서 남자 동기들은 윤희의 이름을 거침없이 부른다.

윤희군!” “말년병장!” 괄괄하고 직설적인 말투,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음주력(!), 상대의 실수에도 곧잘 용서해주는 관용까지 갖춘 윤희를 그들은 편하게 대했다.

여자도 마찬가지다. 꼬리 살랑 치며 남자에게 애교 부리지 않고 스스로 망가질 줄 아는 윤희는 새침한 여자들의 적이 아니었다. 그런 위치가 싫지 않았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된 듯했다. 주변에 남자도 많으니 ‘나쁜 여자’가 된 느낌마저 들었다.

물론 실속은 없었다. 좋다는 남자는 윤희를 친구로만 대했다. 어긋난 사랑의 작대기는 30살이 지나도록 지속되고 있다. 중간중간 썸타는 남자도 있었지만 거기까지였다. 큰맘 먹고 선(先)섹스 후(後)연애도 시도해 봤지만 상처 받고, 남자에게 집착하는 자신을 알게 될 뿐이었다.

연애 불구자가 된 것 같아 주변 사람들에게 고민 상담을 해보지만 돌아온 대답은 하나같다.

“너 주변에 남자 많은 거 아니었어?

의외다. 이렇게 섬세한 여자인 줄 몰랐네?” 그러면서 그들은 은근한 배신감을 느끼는 듯하다.

윤희는 사람들 앞에만 서면 여성스러움은 꼭꼭 숨기고 사내아이처럼 돌변한다. 좋은 사람이라 평가 받기 좋지만, 연애할 때는 도무지 쓸모를 찾아볼 수 없는 이 죽일 놈의 털털함.

윤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 아닌 ‘남자’에게 사랑 받고 싶다.